나의 이야기

신효식의 '명절'

덕산연담 2018. 2. 21. 10:21

 

 

<명절>

그의 사인(死因)은 얼음이었다

구십 평생 꽃 한번 쥔 적 없는 흙 묻은 손
설을 앞두고 꽃차에 태웠다

요령잡이가 선창 하니 행렬이 움직인다
훠이 훠이

황소 귀를 거칠게 잡아당기던 그의 성미처럼
영하의 바람이 무섭게 몰아친다

어린 그가 코 묻히며 타고 놀던
500년 된 열 아름 고목을 지나

부모 아내 잠든 고요한 선산으로
시끄러운 요령소리 따라간다

재작년 아내가 땅 속으로 들어갈 땐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투수처럼
쪼그려 앉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새기던 그였다

작년 추석엔 늙은 육신 이끌고
부모 산소에 절을 올리던 그였다

죽음을 받아놓고 사는 마음이 어땠는지
자식들은 모를 일이었다

설에 찾은 분묘는 아직 자리잡지 못해
그의 발뒤꿈치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위에 올라 내려다보니 무덤의  완만한 능선이

편하게 누워있는 듯 해 마음이 편하였다
 
아버지의 짧은 머리를 어루만지듯
묘를 정리하는 아들의 머리도 하얗게 세었다

얼음 같은 집에
온기를 켜고 빨래를 걸어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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