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죽이기

일본 외골수 과학자들

덕산연담 2014. 10. 14. 17:45

1989년 일본 메이조대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85)와 나고야대 아마노 히로시(54) 교수가 청색 LED(발광다이오드)실험을 하다 전기로가 고장이 났다. 실험에 필요한 고온 환경을 만들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내친김에 저온 실험도 해봤다. 그랬다가 뜻밖에도 청색 LED에 필수적인 고품질 질화갈륨 결정을 생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미국 과학자는 '우연한 발견'이라고 했다. 맞는 얘기가 아니다. 1970년대 초부터 20년 가까이 하루 수십 차례씩 온갖 조건에 시험해 온 결실이었다. 아카사키의 좌우명은 '홀로 황야를 간다'다.

 

니치아 화학공업 연구원 나카무라 슈지(60)는 '실험결과야말로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2년 뒤 성공할 때까지친구.동료와 약속을 일절하지 않고 하루 100차례씩 실용화 실험을 거듭했다.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으려고 전공서적이나 논문도 읽지 않았다. 그런 나카무라를 가르켜서 아마노는 '실험의 신'이라고 했다. 아카사키는 '모든 게 우연이다, 그러나 모든 게 필연이다'고 했다. 세 사람은 이 연구로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엔 '헨진(變人)'이 많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리말 '괴짜'보다는 의미가 더 세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교도대 마쓰가와 도시히데 명예교수는 그때까지 여권조차 없던 사람이다. 수상을 통보받고는 '외국여행을 왜해야 하느냐'고 했다. 생활 영어도 한마디 하지 못했다. 평범한 회사 엔지니어로 2002년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는 회사가 연구소장으로 승진시키려 하자 "연구만 하고 싶다'며 거절했다.

 

1949년 일본인 첫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유가와 히데키도 '헨진'에 가까웠다. 워막 말이 없어 별명이 '말 안하는 아이'였다. 나중에 제국대 교수가 됐지만 연구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를 데려온 선배 교수가 "원래 다른 사람을 뽑으려다 네 형이 부탁해 뽑았더니 이게 뭐냐"고 했다. 아무 말 없이 질책을 듣던 유가와는 얼마 후 물질 근원 원자핵의 구성을 밝히는 논문을 썼다.

 

아카사키는 "LED 연구를 시작할 때 '20세기 중에는 성공하지 못하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랑곳 않고 제자 아미노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실험을 이어갔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아카사키'라는 별명도 붙었다. 일본의 노벨상은 정부. 대기업의 투툼한 지원에 앞서 더 필요한 것이 과학자들의 고집과 집념이다. (조선일보 2014. 10. 13 만물상 신정록 논설위원)  

'생각죽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상  (0) 2014.12.15
고행  (0) 2014.11.10
진정한 친구의 조건  (0) 2014.09.17
신륵사 구룡루의 그림  (0) 2014.09.15
손으로 만든 올빼미   (0) 201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