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걷는 나그네가 머리는 좋아서 거리를 잰다. 남은 거리가 6 키로이다. 저녁 5시반에 고개를 넘어 마을 까지의 거리이다. 아무리 산길이라 하더라도 7시전에는 도착을 하리라고 확신을 하고 길을 떠난다. 요기도 하고 몸도 쉬었으니 힘이 솟는다.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한바탕 숨을 몰아 쉬는 일명 '깔딱점'이 있다. 경사가 더 가파르고 뒤에 멘 짐이 뒤로 당기는 힘이 떠 크게 느껴진다. 더 고개를 땅에 박고는 숨을 고르며 오직 일념으로 고개길을 오른다. 숙인 고개 탓에, 그리고 힘이 든 탓에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다. 그저 발만 한걸음, 두걸음 오직 전진이다.
30여분을 그렇게 걸으면 이상하게 마음에서는 후련한 기운이 감돈다. 그리고 상쾌함이 다가온다. 땀은 나는데, 몸은 힘이 드는데 이렇게 샘솟는 에너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통증을 못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엔돌핀일까? 그래...그럴지도 모른다. 엔돌핀??
산모가 애기를 낳을때, 엔돌핀의 생산양이 어마어마해서 몸을 찟는 고통을 모르고 지나가고 산후에는 어마 어마한 기쁨으로 영원히 남는다고 한다. 남자인 나는 그런 기쁨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렇게 몸이 통중을 느낄때,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추측만을 한다. 아무튼 기쁘다. 그저 앞만 보고 걷는것이 말이다.
팻말에 써있다. '등구재'라고. 짧은 설명중에...이 고갯길은 그 옛날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던길...이란 말이 마음에 걸린다. 얼마나 어린 신부가 울었을까? 다시는 못 돌아갈지도 모르는 친정집을 작별하는 그 심정이 내 마음에 느껴진다. 가마를 메고 힘들게 올랐을 가마꾼들의 얼굴도 어렵풋이 그려진다. 그 좁았을 길을 둘이서 메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던 그런 풍경이...
해가 서산에 걸린다. 어둑해 지면서 안개비가 내린다. 아직 마을까지는 먼데...조금만 어두워져도 길이 어른거린다. 그래서 산길이 무섭다. 산속은 어둠이 빨리오구 그리고 어둠의 농도가 매우 짖다. 정말이지 캄캄하다. 눈을 뜬것과 감은 것의 차이를 모른다.서둘러 랜턴을 주머니에 꺼내 놓고...길을 걷는다. 앞 사람도 뒷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새들의 재잘 거림도 없어지고...멀리 어디선가 소쩍새가 운다. 한동안을 지나니...산 아래 저 멀리 불빛이 보인다. 마을인가보다. 반갑다. 그러나 아직 멀다. 휴~!!
옛날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선비가 과거를 보러가다가 불빛을 보고 찾아가서 하루밤 묵기를 청하니...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문을 열고 어서 들어오라고...밥을 먹고 잠을 자려는데...어둠속에 잡히는 것이 사람의 뼈들...ㅋㅋ...
그 선비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비는 오는데...길은 멀고...잠을 잘곳도 모르고...
그런데도 난, 그저 즐거웠으니...이제서 그 때 그 선비도 나처럼 즐거웠으리라는 생각이 다가온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 것은 그 선비가 아마도 그 집에 살아서 나왔기 때문이기에.
마을에 도착해서 어떤 할머니 집에 여장을 푸니, 그때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짜릿한 하루였다. 다음엔 혼자서 한밤에 고갯길을 넘어 볼까? 말까?...해보고 싶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