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고추가 필요한 때가 왔다. 열무 김치를 담그려고 하니 고추가 열댓개가 필요하단다.
열무 세단으로 김치를 담그는데 그 정도는 있어야 하고 붉은 것이나 파란 것 상관없이 잘 익은 놈으로 골라서 땄다.
그놈들을 신문지에 놓고는 사진을 박았다. 보기에도 매워보이지 않는가? 단단한 것이 매우 실하다.
한번 물에 헹구어서 꼭지를 떼어내고 믹서기에 넣고는 한번 윙하고 놀리니 고추씨랑 함께 먹음직스런 양념이 된다. 열무 물김치에 살짝 넣으니 매운 맛이 나면서 싱싱함을 더해준다. 한 2, 3주 숙성을 하면 잘 익은 물김치로 변신을 하겠지?...아마도 가는 면발의 국수를 삶아서 거기에 말아 먹으면 더운 여름에 별미가 되리라 기대를 한다.
어찌나 고추가 많이도 열리는지 따내고 따내도 늘 많다. 이제는 고추나무의 키가 거의 허리에 찬다. 매일 매일이 다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조루에 물을 담아 주는 것도 그전 보다 그 양이 두배는 늘었다. 충분히 주고나면 나는 내심 안심이 된다. 내가 할 의무를 다한 것이다.
베난다에 놓은 화초도 덩달아서 물을 먹을 기회가 많다. 고추에 주고 나면 웬지 화초나무들이 섭섭해하는 것처럼 느낀다. 한 바탕 물을 뿌려주면 모두가 활기를 찾는느낌이다. 나 또한 아침에 물을 가지고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축축한 기운이 아침의 상쾌함을 더해준다.
식구들이 싱싱한 화초와 고추들을 보면서 탄성을 지른다. 어쩌면 저리도 싱싱하고 잘 자라냐고...난 속으로 말한다.
개들은 냅두면 된다고. 물만주고 다치게 하지만 말고 그냥 바라만 주면 된다고.
그 화초와 그 고추가 주는 말없는 평화로움이 넘친다. 내가 그들을 귀찮게 아니하고 바라만 준 덕분에 그들도 나에게 말없이 풍요로움을 전달한다. 고맙고 고마울따름이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