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골든벨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모두는 자리에 앉아 주시는데 기둥에 부쳐있는 각 조별 명단으로 가 주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멋있을까? 왜?
숭산행원스님이 미국에 처음가서 대뜸 들른 곳이 하버드 대학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한국의 수행승이 강연을 한다고 게시판에 방을 부치니까 호기심이 많은 대학생이 많이 왔다고 한다.
처음보는 한국풍의 가사와 장삼..그리고 까까머리...더구나 발음과 영어가 아주 보잘 것이 없는 스님을 보고 실망이 아주 컸단다. 스님은 단박에 그 것을 알아차리고 그저 하고픈 이야기를 하기 시작을 했고...어수선 하던 강의실이 조용해 지면서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짐을 느끼셨단다.
마지막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시간이 주어졌는데...맨 앞줄의 이쁜 여학생이 손을 들고는 질문하기를....
여학생 : 스님, 사랑이 무엇입니까? (비구승은 결혼을 안하는 걸 알구는)(순간 긴장감이 돌고...)
스님 : 학생, 이쁘구먼...좋은 질문이야...당신 이름이 무엇이지?
학생 : '메리'라고 합니다.
스님 : 하하하...그래 메리양 처음 만나서 반갑구먼...사랑은 이렇게 내가 질문을 하고 학생이 대답하는 거란다.
학생 :....
(잠시후..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이야기는 직접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 입니다>
갑짜기 그런 생각이 난 것은 골든벨에서 문제를 내고 그 문제를 풀어서 답하는 것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같았기에 그전에 들은 스님의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문제를 만드는데 걸리는 노력과 시간들을 생각하고, 또 그걸 잘 읽으려고 애쓰고 그리고 그 답을 알아내려고 눈을 굴리고 머리를 흔들고...답을 이쁘게 써서 높게 들어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면서 모르는 것을 배우고 또 익히고...누이 좋고 매형좋고...도랑치고 가재잡고...선물을 받는 재미도 좋고...
총운영자이신 '곡차' 법우님의 신기한 문제도 아주 매력이었구요 그 정답 또한 참으로 신선했답니다. 처음으로 아나운서에 도전한 '푸른블루'님의 활약도 눈 부셨답니다. 우리 조에서는 배가 고파서 그 칠판을 못들겠다고 불평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나온 야식 겸 다과는 참으로 꿀맛이었답니다. 특히나 인절미는 정말로 제입맛에는 딱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거의 한 접시는 축냈을 겁니다. 어느 법우님의보시인지...어느 떡집인지...궁금하네여~!!
아무튼 이렇게 우리는 배우고 웃고...먹고..행복했답니다..맞죠?..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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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와본 해인사는 참으로 유서가 깊고 역시 감동이 온다. 모든 것이 반듯하고 모든 것이 수행을 하는 것 같다. 그 속에 우리는 우리를 파묻고 한 걸음씩 '평화로운 삶'을 향해 나간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대웅전에는 '대적광전', '금강계단', '대방광전' 그리고 '법보단'이라는 네가지의 현판이 붙어있다.
[대적광전-크게 고요하고 크게 빛나는 집,그러나 글씨쓴 사람은 그런 맘이 없어뵌다]
동서남북의 모두 붙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사연이 있을 법하다.
[금강계단-스님들이 비구계를 받는장소 : 금강은 Diamomnd가 아닌 번뇌를 굴복시키는 무기-'금강저'에 유래함, 이 글씨에서는 번뇌를 제압한 느낌이 난다. 그리고 계율이 청청한 스님이 떠오른다]
[대방광전-크고 무한히 넓은 집 : 보통 화엄경을 '대방광불 화엄경'이라고 하니까 줄여서 대방광전이라 하지 않았을까? 건물 뒷쪽에 붙여놓은 것이 참으로 이채롭다. 어디에도 건물 뒤에는 간판이 없는데...무슨 사연일까?..왕이 써서 보내니까 버리기는 그래서 체면상 걸었다고 볼까?...히히]
궁금하지만 대강 짐작은 간다. 그 용도와 표현 방식에 따라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리라.
[법보단-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물로 모신 높은 곳: 조선시대는 유생들이 글씨 잘 쓰는 것을 자랑하던 시절이다. 명필임을 자랑하려고 써 놓은 냄새가 난다.]
그리나서 둘러본 해인사는 간판의 천국이다. 각각의 건물에 입구와 출구쪽은 물론이고 안에 다가도 무엇인가를 써 놓았다. 잠깐 추측을 하건데, 조선시대에 높은 관료나 실력자가 다녀가거나, 아니면 대 시주자가 원하다면 그 들의 글씨를 받아서 그들이 다시 올때 보고 기분 좋으라고 해 놓다가 보니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박정희 대통령은 휘호를 잘 쓰시고..특히 사기업체의 공장을 준공한다면 만사를 제치고 오셔서 격려해주고 기념으로 멋진 붓글씨를 남기어 주시곤 했다. 그러면 곧 바로 그 것을 돌에 새겨서 공장의 정문에 자랑스럽게 세워 놓았다.
여수에 있는 남해화학-비료공장을 가면 '중화학공업의 기수'라는 말이 큰 돌에 새겨서 사무실 앞 정원 가운데 지금도 있다.
해인사의 설명을 시간에 들어보니 그런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승만 대통령-모세 이후 가장 빠른 시간에 기독교인의 숫자를 늘린 기독교 장로-께서도 해인사를 방문하여 글을 남기셨다. 호가 '운암'이란다.
[해인대도량-운암 : 역시 성의가 없다. 글씨도 별루구..누가 본다고 걸어둘까?....]
대적광전 기둥에 걸린 주련은 2개를 고종이 그리고 나머지는 대원군이 쓴 글씨란다. 대원군은 '속리산 법주사'의 청동 미륵불을 녹여서 동전을 만들어 경복궁의 지은 그래서 이씨 조선이 망했다는 평을 듣는 그런 분이 주련을 쓰다니...역사는 아니러니 하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조금 서글프고 웃기지 않은가여..?
(여담) 속리산 미륵불을 잃어버린 다음, 오랜 시절이 흐르다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콘크리트로 다시 세운다...우리가 소풍가면 거기에는 콘크리트로 된 대형 입상 미륵불이 있었다. 인연이되어 다시 청동으로 만들던때, 그 조각을 하시는 분을 뵈었고, 그 덕분에 개안식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1990년이라 기억된다. 늦가을인데 비가 내렸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 5색의 천을 길게 늘어트리고 수많은 불자들이 모여서 화려하고 장엄하게 의식을 거행하였다. 비를 맞으며... 그런데 난 울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하늘엔 상서로운이 돌고 참으로 기분이 묘한 것이 마음 속에서 느끼는 환희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갑짜기 옛날 기억이 난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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