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등사의 앞마당에 들어서니 오전 10시경이다. 봉축식을 언제하나 알아보니 11시이란다. 많은 여유가 있다. 그래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절에 올때는 넉넉하게 와서 천천히 절도 구경하고 이곳 저곳에 써놓거나 걸어놓은 글들을 읽기도 하고, 참으로 오랫동안 이자리를 지켜온 흔하지 않은 물건들이 지닌 예술성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늘 허겁지겁하던 속세의 습관을 이곳에서는 하지 않는 것도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이 반듯하고 정확한 서양의 종교에 비하면 우리식 불교는 엉성한 듯 뵌다. 우리가 귀의한다는 부처, 그 가르침, 그리고 스님들을 존경을 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깨달으면 부처' 또는 '생명있는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는 말로 평등함을 가르친다. 모두가 수행자이고 '내 안의 불성'을 찾아 길을 가는 구도자라고 한다. 불교에서 주장하는 모든 성인은 절대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자비가 넘치는 착하고 착한 사람이기만 하다. 처음에는 이런 가르침이나 행동이 참으로 낮아보였다. 위대한 신의 계시로 벌도 주고 혼을 내면서 군대처럼 획일적으로 하는 것에 비해서...
그런데, 이제는 이런 모습들이 진정한 평화를 주는 아주 훌륭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을 한다. 교리를 모르던 우리 어머님이 진짜로 더 많은 교리를 아신 것 같기도 하다. 어려운 한문을 알아서 무엇하며, 알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직 한 마음으로 자신 마음속에 평화스러움을 품고, 등을 하나 달고 시주금을 내면서 일년동안 모든 일이 잘 될거라고 확신하시는 그 믿음이 더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운 것이리라...
그런 시골 아주머니들이 앞치마를 두루고 점심 공양을 준비했다. 각종 야채와 나물 그리고 고추장으로 비빕밥, 된장국, 흰 백설기, 수박과 방울토마도를 준비하셨다. 그 정성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마치 시골의 부잣집 따님 시집가는 날과 같은 잔치집 분위기가 나왔다. 천막도 그렇고 그릇을 쌓아둔 모습도 그랬다. 그동안 절은 많이 좋아졌다. 극락전만 빼고는 모두가 바뀌었다. 새로 집도 짖고, 다시 고치기도 하고...나라가 부자가 된 만큼 절도 여유가 생겼다. 절이 좋은 이유중에 하나가 법당에 모신 부처님은 한번 모셨다하면 중간에 바뀌지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끔 개금을 하는 것이 바뀌는 전부이다. 34년전에 뵌 그 부처님의 모습 그대로 나를 보고 웃고 계신다. 사실은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지만 둘다 맞지 않는가?
아주 천천히 아주 공손히 세번을 절을 했다. 아주 간단하다. 이것으로 모든 존경을 바친 것이다. 그 옛날 스님은 그려셨다. 절에 왔으면 법당에가서 3배만하는 것이 우선이고 또한 끝이라고...참 쉽게 말하셨는데...난 내 욕심에 늘 9번을 절했다. 3배를 세번했다. 많이 하면 좋은 줄로 알고...ㅋㅋ. 장난기가 발동을 해서 아미타부처님을 사진기에 담았다. 집에 가서 혼자 볼라고...
아마도 어머님과 비슷하게 나도 등을 하나 달았다. 소원을 적으라기에 '항상 깨어 있으라'라고 썼다.
비가 부슬부슬 온다. 마당에서 봉축식을 못하고 '보광전'에서 한다. 주지 스님은 괜히 미안한 얼굴을 하신다. 마치 비가 스님의 덕이 부족해서 온다는 듯이. 드디어 11시 봉축식이 시작되었다...향을 시작으로 여섯가지 공양물을 차례로 부처님 전에 올렸다. 향, 등(초), 차, 꽃, 과일과 떡(쌀)...정성스레 공양물이 올려지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가슴이 벅참을 느꼈다. 이 자리에 있는 내가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하던지...눈물이 핑돈다.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