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늘 읽고 알고 있는 내용이 어느날 눈에 확 들어오는 날이 있다.
계-戒 하지 말아야 할 일
정-定 반듯하고 조용함을 유지함
혜-慧 이치에 통달함
이 세가지를 우리는 수행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알수 없는 내 마음을 찾아내는 방법이고, 그래서 나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화스러운 삶을 영위하게 끔 해주는 것이다.
'계'를 그릇에 비유를 하고 '정'을 거기 담긴 물에, 그리고 '지혜'는 잠잠한 물에 비친 달의 모습을 말한다. 얼마나 투명하게 달에 물위에 비추어지나가 수행의 목표이고 끝이다.
그릇이 없으면 시작부터가 없다. 우선 그릇을 준비하는 기분으로 계를 받아서 삼가할 일을 구분하여 지켜나가는 것이다. 계는 그 중심에 '욕심버림'을 둔다. 욕심이란 나만을 위한 모든 생각과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욕심버림은 나만을 위하지 않고 다른 사람까지 위한 생각과 행동이면 일단 계를 지키는 것이다.
'살아있는 목숨을 죽이지(사냥이나 도살) 말라'는 계명은 첫째가 나의 목적을 위해 죽이는 일은 없어야한다. 둘째는 다른 사람이 죽이는것을 부추키지 말아야한다. 세번째는 살아있는 목숨들을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다른 계율도 그렇다. 사냥, 도둑질, 섹스, 거짓말, 술취함 (다섯가지 계율)이 모두 너무나 짜릿하고 너무나 유혹이 심한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고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우리는 살아있는 목숨이기 때문이고 그 목숨을 부지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를 지킨다고 하는 것은 내 목숨을 부지하는 정도의 범위내에서 절재를 하고 삼간다는 것이다.
그런 절재가 없이는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그 자체를 포기해야한다.
그릇이 있다고 가정을 하면 거기에 물을 담아야 한다. 물을 담고 물을 관리하는 일이 '정'-고요함이다. 그 물을 깨끗하고 잔잔하게 유지를 하려면 그릇을 움직이지 말고 견고한 바닦에 두는 것이다. 스스로 잔잔하게 냅두는 것이다. 물의 움직임을 생각의 일어남과 없어짐으로 이해하면 된다. 내 생각이 격하고 변동이 심하면 그 만큼 그릇의 물이 흔들리는 것이다. 생각은 어묵동정-語默動靜 말하거나 잠잠할때,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때-에 일정한 템포를 유지해야한다. 그 템포를 잊는 것은 물을 쏟는 것과 유사하다.
가끔은 바닷물도 바람이 쉬는 곳에서는 잔잔하듯 잠깐은 내 그릇의 물이 우연히 잔잔한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조금은 '평화로운 삶'의 맛을 알게된다. 이제 입문은 한 셈이다.
문제는 '지혜'이다. 내 그릇에 비추는 달의 모양이 얼마나 투명하냐가 관건이다. 흔들리는 물에도 달은 비춘다. 그러나 모양은 일그러져있고 선명하지가 못하다. 이치는 알지만 우리가 수행을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그릇에 달을 선명하게 담는 일이다.
선명하게 떠 오른 달은 지혜의 완성이고 '평화로운 삶' 그 자체가 된다. 더 구함도 없이 더 바람도 없이 물이되고 달이 된다. 물에는 달이 없지만 달이 곧 물이된다.
그릇은 '삼가함', 물의 고용함은 '생각 챙김', 달의 영상은 '평화로운 삶'...
이렇게 수행을 한다. 지금, 여기서, 숨을 쉬는 순간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