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강의

7.깨달은 자의 표시

덕산연담 2008. 8. 12. 10:46
 

<강의 6> 깨달은 자의 표시


[스승이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에게 내가 깨달은 자라는 표시가 있느냐?"]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은 스스로가 ‘깨달은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몸에 어떤 표시를 자랑했다. 예를 들면 32가지의 일반인과 다른 사항을 열거하고 그중에 몇 개만 맞아도 그 것을 증표로 사용하곤 하였다.


지금도 화장한 다음 재에서 나오는 사리가 영롱한가를 가지고 살아서 그 분의 수행력을 판단한다고 하지 않던가.  아마도 보디사트바라면 깨달은 사람이라는 표시가 있을 것으로 많은 사람은 알고 있는 듯하다. 


처음 장면에서 수부티가 '훌륭하다'면서 감탄을 한 것으로 이 말들이 시작된 것을 기억하시는가? 왜 훌륭하다고 했는가? 그것은 스승의 훌륭한 외형적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깨달음의 표시가 무엇이든 어떤 수행자를 놓고 그 사람의 깨달음의 정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그런 무엇인가가 있어서 그 당시 많은 논쟁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스승은 수부티에게 묻는다.


내가, 보디사트바인 내가 깨달은 사람이라는 표시가 있다고 생각하는냐?


[수부티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무런 표시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곧 깨달은 자의 표시라고 스승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뻔한 대답이다. 있을 수 없다. 없어서 보디사트바로 불리는 것이다. 지금 말고 언젠가 전에 수부티가 수행을 할 때에 스승은 그렇게 말한 적이 있고, 그 말이 맞으며 사실임을 수부티는 그 동안의 수행으로 터득해 재 확인한다. 보디사트바의 길을 가는자는 '아무런 표시가 없어야'지 비로소 보디사트바가 되는 것이다.


[스승이 말했다. "어떤 표시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며, 아무런 표시도 갖지 않고 있을 때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따라서 깨달은 자는, 아무런 표시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의 표시여야 한다."]


스승의 재 확인이다. 그렇다. 그전에도 이야기를 해 준 것처럼, 보디사트바가 되면 표시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그런 표시를 갖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니 그런 표시 있다면 그 것은 보디사트바가 아닌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말을 중국어로 아주 멋지게 번역을 하였다


범소유상凡所有相  온갖 겉 모양은

개시허망 皆是虛妄  모두가 허망하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모양이 모양 아닌 줄 알면

즉견여래卽見如來 바로 여래를 보리라

(월운스님 번역)

해석을 해보면 이렇다. 

"깨달은 자가 어떤 외형적인 깨달음의 표시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다 깨달음이 거짓이라는 뜻이며

아무런 표시를 가지지 않은 것을 표시라고 한다면

그는 깨달은 사람, 여래 또는 보디사트바 이다"


잠깐, 중국어 금강경 단어를 보자


- 표시 : 신상身相

- 거짓 : 허망虛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