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든 판단을 머리에 기억된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하여 결정을 한다. 그런데 정말로 묘한 일은 즐거운 기억과 나쁜 기억을 정확하게 나누어 따로 보관을 하고 필요에 따라 그 기억을 꺼내어 다른데 사용을 한다.
...즐거운 기억은 과거의 즐거운 기억과 비교를 하여 매우 즐겁지가 않으면 최근의 즐거움은 저장이 되지를 않는다. 예를 들면, 처음먹은 김치찌게가 매우 맛있었다고 기억이 되면 그 다음에 먹는 맛은 기억에 없고 처음의 그 맛 만을 기억한다. 그러다가 아주 유명한 음식점에서 아주 색다른 김치찌게를 먹고 그 맛을 좋아한다면 그때서 옛맛을 잃고 생에 최고인 맛을 기억하며 늘 그 김치찌게를 먹고 싶은 욕망을 지니게 된단다. 그래서 단골집이 생기고 대박집이 생기는 이유라한다.
...나쁜 기억은 그 반대란다. 모든 나쁜 기억은 모조리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기억을 담아두고 모든 상황에서 매우 자주 기억을 하고 판단의 자료로 삼는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나쁜기억은 어제 일처럼 오래된 것도 생생하다. 나를 괴롭힌 사소한 일부터 고통이란 고통은 모두가 말이다. 그러니 속담에도 '자라보고 놀란가슴은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한다. 공포는 그 고통을 더 증폭시키고 그 기억을 생생하게 한다.
이런 작용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 해당이 된단다. 아주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일이다.
어떤 모임에서 목사가 축도를 하는데, ....이길만큼만 시련을 주시고...라고 신에게 간청을 하는 소리에 귀가 번쩍 띄였다. 참으로 멋진 말씀이시다. 고통을 이길만큼만 달라신다. 그렇게 해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그렇다면 세상은 달라진다.
이제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고 나쁜 기억은 더 이상 나쁜 기억이 아니다. 나의 고통은 신의 선물이고 내가 견달만큼만 주실텐데...모두가 기쁨이 되고 좋은 추억이 된다. 고통을 기다리고 오는 고통은 내가 견딜만하고 견뎌낸 고통은 신이 나를 사랑하신 증거가된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 신의 은총과 축복을 받은 사람은 얼굴이 다르고 모습이 다르다. 이미 우리가 사는 속세를 초월했기에 말이다.
병원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에게 희망을 보낸다. 너가 있는 자리에 환한 빛이 보인단다. 너무나 많은 신의 축복이 있기에...힘내서 그 고통을 이기고 멋진 모습으로 만나고 싶단다....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