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미운 녀석은 참으로 보고 싶은 놈이 맞다. 미운 녀석은 늘 뭘 사달라 배고프다고 이야기를 하면 안사주고는 못배긴다. 그렇게 정이 들고도 자꾸만 미워진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저질러서 마음을 상해 놓고도 무엇이 잘못인지를 잘 모르는 정말로 미운녀석이다.
미운 녀석은 전화를 해도 바쁠때 하고, 안받으면 받을때 까지 전화를 해대고, 자기가 하고 싶다 싶은 일은 주위의 도움을 다 동원해서라도 이루고야 만다. 그래서 더 밉다. 늘 빈손이고 늘 말이 앞서고 늘 자기가 최고인 줄 착각을 한다.
그런 미운녀석을 안보면 그만인데, 소식이 뜸하면 궁금하고 보고싶기도 하다. 연락을 하면 당연히 연락올 줄 알았다고 자기의 자존심을 최고로 내 세우고 바쁘지만 만난다는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먼저한다. 그 녀석의 속을 알수가 없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 미운 녀석이 잘 하는 장점이 있다. 그 장점이 미운짓을 잘 하는 것이다. 내가 그 녀석과 한편이 되면 모든 미운짓은 그 녀석이 하니까 나는 무진장 편하다. 무엇을 얻어오는 일이나 어려운 부탁을 하는 일이나 입장이 난처해지는 상황에서는 늘 그 녀석이 나서서 일을 해결하니 그 옆의 나는 거져 먹는 거다.
그런 재미가 그런 미운 녀석을 늘 대동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좋다. 원님 출타시에 나팔을 부는 격이다. 나팔이 알려주는 정보는 원님과 그 산하 백성들과의 마찰을 사전에 조율하는 셈이 된다. 그 원님 보기 싫으면 집에 있던가 아니면 얼른 자리를 피하든가...결정을 한다. 그 나팔 소리 듣고 원님이 나타나기전에.
미운 녀석이 불어대는 나팔소리는 나의 소심함과 나의 이기심을 조금씩 무너트린다. 늘 더 푸짐하게 주문을 하고, 자기의 취향대로 이끌려고 고집을 부린다. 계산은 자기 몫이 아니지만 아주 배짱좋게 한다. 그 덕분에 종종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하고 생각보다 많이 먹기도 한다. 미운녀석은 거기다 유쾌하기까지하다.
내 주변에는 미운 녀석이 참으로 많다. 쉬운말로는 맘에 않드는 녀석들이다. 그래도 그놈들이 전화하고 만나자고 졸르고...자꾸 어디를 가자고 독촉을 하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사르르 풀린다. 미운 녀석은 나름대로 철학이 있고 도도하고 꼿꼿하게 자기의 인생을 산다. 누구에게 쉽게 물들지 않고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밉다가도 고맙다. 참으로 사람의 관계는 우습다. 그래서 좋은 놈과 나쁜 놈을 구분해서 마음속에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자체가 이미 불행한 인생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미운녀석도 좋고 나쁜 녀석도 좋고, 좋은 녀석은 더 좋다. 그렇게 더불어서 사는 것이 살고보면 행복한 삶이라고 힘주어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만나면 그렇게 미운 녀석이 헤어지면 그리운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그 녀석은 향기가 너무 맑아서 가까이서는 향이 있는지도 모르다가 멀리 멀리 떨어지면 그제서 그 맑은 향에 취하나보다.
오늘은 누가 미운 녀석일까? 아마도 어제까지는 사랑스런 녀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운 녀석과 사랑하는 녀석은 같은 말이니까...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