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성질이 변하여 다른 물건이 되는 것을 변질이라고 하고 상태가 변한 것을 변화라 한다. 이를테면 물이 얼음이 되는 것은 온도에 따른 변화이고 물이 썩어서 폐수가 되면 물이 변질된 것이다. 변화는 조건이 변하면 다시 원래로 돌아 올 수가 있지만 변질된 물건은 어렵다.
'사람은 변화하기 쉽다'는 말과 '사람은 변질되기 쉽다'이 비슷한 말이면서도 무척 의미가 다르다. 누군가 변화를 한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좋은 일이지만, 변질된다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왜냐하면 변화는 누군가의 자극으로 인해서 그 것을 계기로 미래를 향하지만 변질은 스스로가 과거에 억매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수행자가 책을 냈다기에 샀다. 인연이 있어서 몇번을 뵙고 수행력이 있다고 생각을 한터였기에 아무런 의심이나 주저없이 샀다. 옛날의 그 분을 생각하면 10여년전 보다 더 성숙하고 더 아름다운 수행자를 그리며 그의 글을 읽었다. 그러나 냄새가 났다.
주로 일상적인 내용이다. 마치 혼자사는 홀아비 농부가 밭일구면서 나무심고 과일따고 텃밭이나 가꾸며 세월이 참 좋다고 한참을 읊조렸다. 세상에... 부처님의 공덕으로 시주를 받으니 아마 그돈으로 생활은 되나보다. 그렇게 농사를 짖느다면 굶어 죽어도 한참 전에 죽었을 것이다. 참으로 말은 좋다. 파도가 포근하고 해가 뜨고 달이 뜨고 차맛이 좋고 고구마, 감자가 어떻구..꽃은 뭐가 이쁘고..새는 울음이 어떻고... 수행자가 다 그러면 참 나쁜 짓이다. 자기 혼자 취해서 좋은 것을 남들도 좋은 줄로 착각을 한다. 왜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가지 못하나. 왜 땅을 시주받고 집을 짖고는 아집을 키우나...
속세의 거사만도 못하다. 이리저리 어려운 것은 다 남의 탓이고 자기는 도인 이란다. 남들은 생각이 부족해서 자신이 부처인 줄 모르고 자기는 자기가 부처인줄 알아서 편하단다. 10년 전에 하던 이야기 판박이다. 회광반조라고 한다. 본인만이 안다. 그리고 글귀에 인용한 모든 말이 초보자도 아는 옛날 중국의 어떤 선사가 어떻고 저쩌고...힘들면 회광반조하며 회피한다는 생각에 슬펐다.
참으로 나쁘다. 왜? 그간 본인의 깨달음의 세계를 감추나?..깨달음이 없으면 조용히 정진을 해서 더 나이 먹어서 누군가가 간청을 할때 그 때 책을 내던지...아직 부처가 아니다. 더 깊게 공부해서 우리가 아는 우리말로 부처님의 핵심을 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난 글을 읽으면서 약이 올랐다. 자기 자랑이지 뭐 어디도 자비심이 없다. 남들이 모르는, 옛날 선사가 한 이야기가 아닌 뭔가 획기적인 사실을 기대했다. 변질되었다. 그래서 화가 난다. 멀쩡한 절에서 소임을 다했으면 그냥 그절에서 있으면서 백의종군하면서 수행을 하면 얼마나 좋은가. 다시 집을 짖고 선방이라고 하고 자칭 선원장에 수련회를 빙자로 밥값을 한단다. 자기 합리화이고 자기 이기주의다. 작은 섬의 신도가 헷갈릴거다. 옛날 절은 그대로인데 정든 스님은 바로 밑에다가 또 절을 차렸다. 어디로 가냐?
그따위 글에 종이는 최고급이고 양장이다. 그래도 책까지 쓴 큰 스님 대접받을라 했나보다. 달라이 나마 성하나 탁닛한 스님이나 아잔차스님의 글을 보라. 감동에 눈물이 안나오고는 못배긴다. 그 책들 중에 어디서 한가하게 나무나 심고 꽃이나 심는 그런 썩은 글귀가 한 줄이라도 있는가?
도로아미타불이다....나원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