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죽이기

백록담

덕산연담 2011. 9. 16. 23:17

 

비온 다음날...추석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한라산을 오르려고 준비를 한다. 늦어도 8시에는 성판악에 도착을 해야야만 백록담을 오를 수가 있다고 스님은 조언을 하신다. 보통 9시간에서 10시간의 산행이라고 단단히 준비를 하라고 한다. 잠도 충분히 자고 아침도 챙겨먹고, 산에서 먹을 간식도 미리 준비를 하라고 한다.

 

셀 수가 없을 만큼 제주도를 왔지만, 한번도 한라산을 올라갈 용기를 낸 적이 없다. 늘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골프를 치거나 바닷가를 거닐는 일 아니면 배 타고 마라도를 다녀 오는 일에 정신이 팔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행이 다르다. 고행이라면 고행인 몸이 힘든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걷고 또 걷는 일...그렇게 정한 것이다.

 

12시30분까지 진달래밭 매점에 도착하지 못하면 정상을 못 간다는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있다. 그리고 정상에서는 오후2시엔 무조건 내려와야 한다. 물론 등산객의 안전을 위한 조처이지만, 마치 산악 훈련을 해야하는 기분이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타이머를 손에 쥐고 기준 시간을 넘으면 얼차려를 시키던 군대 훈련소 생각이 스쳐간다.

 

마음을 다 잡고, 군중들 속에 끼어서 한 걸음씩 산 속으로 들어간다. 온통 돌 잔치이다. 바닦에 깔아 놓은 돌은 비와 이슬에 젖어서 축축하다. 중간 중간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서 등산객이 편하게 해주었다. 마치 산책로를 걷듯 잘 정리된 산길을 걸으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외국인들도 눈에 자주 띈다. 외국사람은 모두가 평상복인데 비하여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전문가 수준의 등산복 차림이다. 어떤 외국인은 등산화도 아니고 간이 신발이다.

 

마음을 챙긴다. 길 가운데로 의젖하게 오르리라고 마음을 정했다. 여러 사람들 가운데 내가 가장 우아하게 산을 오르고 싶었다.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조금 숙이고 발은 뒷꿈치 먼저 닿도록 노력을 하고...숨은 고르게 쉬고...뭐 이런 것을 챙겨 보았다. 잡념이 들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손에 쥔 염주를 돌리며 한 걸음씩 전진을 한다.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오르고 또 오르고 그래서 진달래밭 매점에 도착하니 12시다. 컵라면 하나 챙겨먹고 12시 25분에 다시 정상을 향해 발 걸음을 옮겼다. 한시간만에 올라서 난생 처음으로 백록담을 내려다 보았다.

 

백록담...흰 사슴의 연못~! 백유경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설화가 나온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렇다. 사냥꾼이 사냥을 나갔다가 흰 사슴을 만난다. 화살을 당겼지만, 빗나가서 놓치고 만다. 사냥꾼은 그 사슴에 집착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밤과 낮으로 그 사슴을 찾아서 다니다 지쳐서 운다. 그때 흰 사슴이 나타나서 그에게 안긴다. 나를 잡아가라고...그때 그 흰 사슴이 전생의 석가모니 였단다. 늘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몸까지 내어주는 그 자세가 진정한 수행자의 길이라 여겨진다.

 

바라만 보던 한라산의 정상을 올라보니 구름이 왔다가 갔다가 한다. 백록담이 보이는가 싶으면 다시 안개로 덮히고...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한라산 산신 할멍이 오늘은 심기가 편하신가 보다. 2시가 가까이되니 안내가 나온다. 이제 모두 내려갈 시간이란다. 안개비처럼 비가 내린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온길을 다시 간다. 다시 올것을 기약하며 난, 내 달리듯 신나게 내려왔다. 꼬박 10시간이 걸린셈이다.

 

내가 한라산 백록담을 처음으로 간 날이다. 기념일이다.  누군가 함께 파티를 하고픈데...아무도 없다. 그래도 소득이 있다. 중간에 포기하려는 생각을 잘 관리한 내가 자랑스럽다. 내려와서 캔 맥주로 자축을 한다...수고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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