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문(家門)

덕산연담 2010. 12. 14. 10:41

'가문을 빛내라' - 효도의 끝은 이것이다. 소위, 입신양명(立身揚名)-몸을 일으켜서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다. 이런 관습이 조선시대의 유교이념에서 우리의 유전자에 깊게 각인된 진실이다.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높은벼슬을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하는 것이다.

 

한번 벼슬에 오르면 그 후손들은 그 후덕으로 평생이 편하다. 일단, 나라에서 주는 월급과 땅이 있으니 먹고 사는 것이 넉넉하고 하인을 거느리니 부와 명예가 한 손에 들어온다. 벼슬 한 자리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해서 반드시 출세를 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가 되었다.

 

그런데 과거시험이라는 것이 글짖기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영어로 그날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시(詩)를 써 내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한문으로 중국발음의 음률에 맞추어서 붓글씨로 써서 내는 것이다. 그 내용에서 인품과 학문의 수준을 판단하여 당락을 결정한다. 세상에 이렇게 낭만적으로 관리를 뽑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중국에 의지해서 살아야하는 처지에서는 어쩌면 현명한 방법이기도 하다. 가끔, 중국에서도 감탄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선비가 쓴 한문시와 붓글씨에...

 

양반이라는 말도 문반과 무반, 이렇게 2개의 반이라는 뜻으로 조정에서 임금 밑에 늘어선 관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금은 정치가 경제권이나 사법권이 분리되어서 정치인이 별로 힘이 없고, 또한 투표로 선출을 하니까 임시직이지만, 그 당시는 왕의 지명이고 또한 한번 양반은 영원한 양반이 된다. 그러니 왕명을 좌지우지 하는 인물이 최고의 어른이고 실세가 된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를 늘 외우는 이유는 그렇지가 않으면 출세 길이 막혔다.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앞에서는 무조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야한다. 부모에게서 많은 것을 받아야 하기에 부모에게 잘 하지 않으면 그 혜택이 준다. 그런데 그 손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조선시대 욕중에서 가장 심한 욕은 '너를 호적에서 파내버린다' 이다.  가문을 벗어나면 모든 꿈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나라 살림이 궁핍하니 양반집에서도 가난이 찾아왔다. 그래서 부자집에 족보를 들고와서는 팔고는 그집의 노비로 지낸 양반이 생겨난다. 배고픔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사다. 그저 죽음을 면하는 먹을 것...그것이 최고가 된다.

 

지금 우리는 가문을 잘 모른다. 해체가 일어났다. 일본시대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조선사람이었다. 그중 성을 바꾸어서 일본인이 된 양반도 많다. 그래서 가문은 흐려졌다. 그 다음은 한국전쟁으로 죽음을 너무나 흔하게 보아왔다. 가난에 지쳤다. 그래서 가문을 잊었다. 별로 도움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런 경험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문물과 기술을 배워서 이렇게 잘 산다. 더 잘 살면 다시 가문의 부활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라는데 아주 행복해 한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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