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바로 이분이란다~!
설레임을 안고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이 좋은 일이다. 전쟁터로 가는 사람이 설레이지는 않으리라. 회사로 일을 가는 사람이 설레이지도 않으리라. 애인을 만나러 간다거나, 나라의 훈장을 탄다거나 그런 큰 마음의 동요가 있을때 설레인다는 말이 어울이리라.
그런 것도 아닌데, 지금 나는 설레임이 생겨서 아주 한 걸음에 달려간다. 시골 동네 친구랑 후배들 모임에 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솔직히 40년 전에 고향을 잊었다. 고향을 떠나서 서울로 그리고 외국으로 가면 그 것이 출세이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믿는 시절에 나는 그렇게 살아 온 셈이다. 부모님도 고향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오셔서 나는 그만 그 뿌리를 잃어 버린 셈이 되었다. 부모님과 조상님들이 그 곳에 뼈를 묻었지만 나는 늘 지나가는 나그네요, 일이 있어서 들리는 낯선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세월은 흘러서 새로운 사람들로 바뀌었고, 내 옛 이야기를 듣고 기억해주는 사람도 몇명이 뿐이다. 다행히 부모님의 기억에 의지해서 나를 알아보는 정도이다. 그래서 고향을 들렸다가 와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냥 그런 밍밍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 이끌리는 설레임이 날 기쁘게 한다.
우리는 만났고, 맥주를 마셨고, 돼지목살을 참나무 숯불에 바베큐를 했고, 버섯찌게와 흰쌀밥을 먹었다. 그리고 옛날 사진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밤새 장작불을 지피고 불 옆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새벽에 일어나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면서 산 길을 걸었다. 커피도 마시고, 기타소리에 마추어 작게 노래도 불렀다. 헤어짐이 아쉬움이라는 사실을 참으로 오랫만에 맛 보았다.
지금 난 다시 서울이다. 처음으로 고향을 다녀온 듯 그 곳이 그립다. 잃었던 고향이 거기에 있었고, 나를 기억해주는 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너무나 흐뭇했다. 마음에 난 큰 상처가 아무는 느낌이다. 사실 많이 보고 싶고 안기도 싶었나보다. 썰렁한 들판만이 나를 반기고, 빈집과 집을 허문 집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었는데...그 집에서 자라고 그 동네서 살아온 착한 사람들을 보니 모든 근심이 없어지고 좋기만 하다.
이 사람이 바로 그 분이란다. 내가 떠날때 5살 짜리 애기가, 종손이 때어났다고 그 할아버지가 우리 마당에서 춤을 추었던 그 애기가 이제 45살의 멋쟁이가 되었다. 그 때 했던 말없던 작별인사를 여기서는 40년만에 반가움으로 온다. 그 간의 안부를 묻자니 한 없이 미안하다. 내가 넘 무심했다. 조금더 친근하고 조금더 가까이 갈 걸 그랬구나하는 후회가 온다. 내 어릴적 참으로 친절하고 고마운 분들 이었는데...차차 갚아 가보자구나.
난,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네요. 고향이란 따뜻한 곳이 있고 내가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더 무엇을 바라느뇨? 이런 기회와 자리를 마련한 고귀한 분에게 고맙다 안하면 바보지?...정말로 좋았고 유익했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