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
탁발이다. 내가 어릴적엔 시골에서 가끔씩 스님이 대문에서 목탁을 치시면서 기다리셨고, 어머니는 쌀을 반바가지 독에서 꺼내서 자루에 넣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그 스님은 천수경을 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땐 무슨 대단한 주문이라도 외우는 것 같앴고 좋은 일이 금방 생길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부처님에게 공양미를 올리면 부자가 된다고 어머니는 말씀을 하셨고, 그 말은 당연한 말 처럼 들렸다.
지난 연말 라오스에 잠시 머물때, 새벽에 이어지는 스님의 탁발 행렬을 아주 흥미롭고 신기하게 본적이 있다. 일부러 새벽 5시반 시간을 맞추어서 나가서 기다리고 나도 밥을 사서 공양을 올렸다. 대부분 어린 스님들이었지만, 중간에 아주 연로하신 스님을 뵙고는 마음이 뭉클했다. 소위 고참 스님이신데도 손수 탁발을 하시는 구나...금강경의 첫문장에 나오는 부처님의 탁발 장면과 겹쳐져서 한동안 눈시울을 붉혔다.
...요즘 문제가 되는 스님의 도박과 음주와 흡연과...등등 스님 답지 않은 행동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참으로 울적하다. 수행이 무엇인데...스승님의 줄인말이 스님이라던데....비구는 밥을 탁발해서 드시는 수행자라는 뜻이라는데....허허허.
일부러는 아니었지만, 와이프랑 늦은 저녁 때 쯤에 집 근처 전통시장을 갔었다. 냉면이 맛있다는 말을 전해 듯고 찾아간 집은 시장 안의 노상 음식점이었다. 위생상태나 주변여건이 음식을 먹기에는 내 성에 차지를 않는다. 냉면을 시키니...공장에서 배달된 봉지를 뜯어서 면을 삼고, 동봉된 육수를 부어서 그 위에 열무와 계란을 올려서 내온다. 물론 얼음도 넣어서...처음으로 음식을 여기서 시킨 것을 후회했다. 좀 찜찜하달까? 식욕이 안생긴다. 와이프는 양이 많다면서 내게 냉면을 옮긴다. 업친데 덥친 격이다.
그때 생각난 것이 탁발이었다. 내가 수행승이었다면, 이 가게에서 이런 공양을 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탁발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랬다. 얼마나 수행을 해야 이런 경계에 순해질까? 맛잇는 것과 아닌 것...깔끔한 식당과 아니곳...신선한 음식과 아닌 것...이런 경계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실감을 했다. 나는 말없이 냉면을 다 먹고는 주인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세상이 달라보인다. 수행은 여기서도 행해지는구나~!! 이 사람 저사람이 생각나는 대로 넣은 음식을 오직 고마운 마음만을 지니고 드시던 그 탁발스님의 경지가 새삼 높아보인다. 그런 스님이 우리나라도 많이 계시겠지?...정말 그립다. 넉넉한 자비를 지니신 탁발하는 스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