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행선
태풍의 영향이라고 비가 무진장 올 것이라고 스님은 이야기 한다. 제주도에서 태풍은 매우 위협적이어서 경험이 없는 나는 당황을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태풍이 지리멸멸해서 큰 영향이 없다고 한다. 그런 미미한 태풍이 가져온 비와 바람은 내가 육지에서 경험한 것 태풍보다 크다. 천둥과 번개 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마구 하늘에서 굵은 비가 내린다.
비오는 바닷가는 인적이 없이 조용하다. 배는 모두 잘 묶어두고 파도가 더 큰 포물선을 그린다. 아무리 어수선한 날씨라도 나는 마냥 즐겁다. 내가 못 보던 세상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비를 맞으며 걷는다. 파도 소리는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 빗소리에 존재감을 잃었다. 잘 정리된 바닷가는 한폭의 그림이다. 빗물과 섞인 바닷물이 아주 묘한 색깔로 한층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내가 젊은 시절 사우디에서 근무 할때, 인근 산에 올라 부서지는 바위를 보면서 마음이 짠한 기억이 있다. 풀 한포기 없고 태양에 노출된 바위는 종일 햇빛에 고문을 당한다. 그리고는 서서히 피부를 벗기듯 갈라지고 깨어지고...결국은 모래가 되어 바람타고 하늘을 나른다. 그래서 비를 맞으면, 왜 비가 빗님인지...그리고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감상에 빠진다.
오늘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골랐다. 숙제다. 하루 종일 암송을 하면서 걷는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 빛 와 닿아 스러진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저녁 노을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이 손짖하면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 하리라.
수행자가 좋아하는 단어가 참으로 많이 들어있다. 돌아간다, 빛, 새벽, 저녁, 노을, 구름, 소풍...술을 좋아 했다는 시인은 아마도 스스로는 수행자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를 암송하면, 내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늘 수행자는 자기의 본성으로 돌아가길 원하니까...
멀리 수평선 밖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다. 바다를 보면 또 거기에 다른 세상의 천국이 보인다. 어쩜 그리도 색깔이 이쁜지...태양에서 나온 자연광이 부서지고 갈라지고 나뉘어져서 내 눈에 들어오는 그 빛깔은 정말이지 명품이다. 내가 거기서 그렇게 보곤 느끼고...그리고는 내 소풍도 아름다웠다고 큰 소리로 떠 든다. 길위로 넘쳐 흐르는 빗물을 일부러 철벅거리며 난 좋아 죽는다. 여보게, 저승갈때 무엇을 가져가나?...이 소리나 가져갈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