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음
시골에서 방아간이 돌아가는 날이 따로 있다. 늘 쉬어있다가 몇집에서 방아찔 거리가 생기면 그때 발동기에 시동을 걸고 돌려서 정미기를 돌린다. 특히 보리 방아찧기는 힘이 든다. 우선 껍질을 벗기고 그 다음에는 표면을 몇번씩 갈아내서 처음엔 검은 색의 보리를 조금씩 흰색으로 만든다. 물론 흰색이 될수록 보리쌀의 양은 줄어든다. 이때 가난한 사람은 양을 줄게 하지 않으려고 방아간 주인에게 그만하라고 주문한다. 그래서 가난한 집의 보리밥은 유난히 까만 꽁보리 밥이다. 그 밥은 너무나 거칠어서 삼키기가 어렵고 입에서 모래처럼 겉돈다. 몇번을 삶고 삶아서 밥을 해도 그렇다. 그러니 평생 소원이 부드러운 쌀밥에 소고기 국이 된다.
밀을 빻아서 밀가루를 만드는 일 또한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엔 밀 껍데기를 벗기고 분쇄기에 넣어서 수십번을 거치면 고운 밀가루가 된다. 지금은 워낙 기계 성능이 좋지만 옛날에는 그렇지가 못해서 고운 밀가루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손으로 밀가루를 만져보면 금방 그 거친 정도가 느껴진다. 양이 줄거나 느는것이 아니니까 늘 시비는 방아간 주인과 곡식 주인간의 의견차이다. 더 고운 밀가루를 만드는 비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들여온 밀가루가 인가가 좋았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 곱기가 너무나 예술이었던 점도 있다. 가루가 고우면 고울수록 음식은 요리가 쉽고 맛이 있는 것은 상식이다.
고운 것과 거친 것은 무진장 상대적이다. 고운 것에 비해서 거친 것이다. 거친 것 하나만 있으면 그 것을 거친 것이라 말하기 곤란하다. 그냥 밀가루이지...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그렇다. 말도 행동도 그 마음 씀새도 가능하면 고운 것이 좋다. 친구를 만나 그이 행동을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따뜻한데, 좀 거칠다는 생각이 드니까...조금은 안스럽고 2% 부족해 보인다. 거만하다는 것도 거칠다는 뜻이다. 겸손하고 친절하다는 것이 곱다는 의미가 되리라. 그 기본에는 배려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거나 그를 고쳐보려 하지를 않는다. 그런 행동이 이미 거칠은 행동이다. 그냥 그사람의 품성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가 행복하고 편하게 느끼도록 내가 행동하는 것...그 것이 더 고운 삶이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내 얼굴에 작은 미소가 생긴다. 나보다 더 고운 삶을 사는 친구가 이제서 보인다. 아직은 내가 더 거칠다. 방아간에서 고운 밀가루 만들려면 여러번 돌리듯 나를 곱게 하려면 엄청나게 애를 써야하리라. 돌리고 돌리고...고우면 고울수록 나도 그리고 내 옆사람도 모두가 행복에 겨워서 눈물을 흘리리라...
...평생 이렇게 고운 밀가루는 처음이랑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