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벗꽃
아무런 계획이 없는 날이 가끔있다. 그런데 그것이 화창한 봄날이고 일요일이다. 이럴때는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대충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좋을 텐데...몸에 배인 습관은 날 불편하게 한다. 5시반...더 잠을 자려는 내 의지와는 반대로 일어나서 움직인다. 이른 아침엔 아직도 좀 차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북한산 둘레길을 걷기로 하고 나섰다.
새벽에는 새들의 지저귐이 듣기 좋다. 아마 그들도 아침인사를 하는건지도 모른다. 유난히 이른 새벽과 늦은 저녁에는 새들의 속삭임이 분주하다. 지난 여름 태풍의 피해로 넘어진 나무들은 일어날 생각을 못한다. 너무나 심한 상처에 그 후손들에게 유언을 했나보다. 뿌리에서 작은 싹이 돋아난다. 대부분 아카시아 나무이다. 줄기에 가시가 있는 나무는 그 뿌리가 깊지 못하다고 한다. 역시 아카시아도 등치보다 뿌리가 빈약하다. 그래서 바람에 약했나보다. 색깔이 예쁜 뱀은 독이 없고...
겨울을 잘도 이겨낸 나무가 꽃을 피운다. 앞에 홀연히 나타난 벗꽃은 그 자태가 남다르다. 그 주변이 환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너무나 아까워 사진으로 남기고 그놈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에게 자랑삼아 보내리라. 이른 아침에는 역시 사람이 적다. 가끔 잠없는 노인 몇분만이 보일 뿐...한가하다. 산에 올라 내가 사는 집을 바라보니 한편 우습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세상사가 우스워서 말이다. 발 아래 모든 것을 두고 세상을 보는 일도 가끔은 좋은 일이라 믿는다. 내가 그 세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는 순간이니까...
등에서 땀을 느끼면서 다리에 힘이 들어감을 인식한다. 몸이 조금씩 풀린다는 신호다. 한결 움직임이 부드럽다. 조금 고통을 주면 몸은 긴장을 하면서 마음을 가볍게 한다. 그래서 내가 아침에 산책을 하는 이유이다. 걸으면서 생각이 스쳐감을 느낀다. 이놈도 가고 저놈도 가고...생각이란 놈이 왔다가 간다. 생각이라는 것이 하나의 물질이라는 표현에 의아해 했는데...맞을 거라는 느낌이 온다. 오는 놈 가는 놈을 구별한다는 것 자체가 물질이다. 형체만 없지...에너지는 있으니까.
....마음을 최대한으로 행복하게하고 평화스럽게 끊임없이 유지하는 일...나는 그 일에 오늘 아침 산책으로 그 수단을 삼았다. 참으로 좋은 일이고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