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후기

성주사(4)

덕산연담 2011. 3. 22. 15:44

대웅전은 소박했다. 원래 성주사는 작은 절이었단다. 창원이 개발되고 현대화 되면서 이렇게 건물을 짓는 불사를 했다고 한다. 불과 20여년 동안 사격이 달라 졌다고 한다. 다른 건물을 크게 짓다가 보니 상대적으로 대웅전은 작아 보인다. 소박하게 수행을 하던 옛 스님들의 삶을 보는 듯하다.

 

주련도 다섯 글자로 소박하게 적었다.

 

세존좌도량(世尊坐道場) 청정대광명(淸淨大光明)

비여천일출(比如天日出) 조요대천계(照耀大千界)

 

자비로운 부처님을 여기에 모셨더니 께끗하고 맑은 기운으로 세상이 환하구나

하늘에 태양이 떠올라서 온 세상을 밝게 비쳐서 빛나듯이 ...

 

나는 개인적으로 작은 법당을 좋아한다. 기도하기도 좋고, 절하기도 좋다. 송광사의 법당을 들어서서는 너무나 큰 불상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상을 만들때, 가능하면 크게 하는 것을 좋아 했다고 한다. 동양에서 가장 큰,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처를 만들고 거기에 기도를 하여서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처님의 가피를 받고자 했다. 얼마전에 입적하신 청화 큰 스님은 늘 고행상을 모시고 수행을 하셨다고 한다. 뼈를 깍는 아픔을 이기고 고행을 하였기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방일한 수행자를 채근하기 위해서 였다고 전한다. 모셔진 불상이 어떠하던, 수행자의 마음자세가 중요하리라.

 

 

수행을 시작한 이유는 고통으로 부터의 해방을 꿈꾸기 시작하며서 부터이다. 흔히 생노병사로 일컫는 인간으로 받는 고통으로 부터의 초월 또는 해방이다. 요즘 말로는 가장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그 방법으로 지금 나는 순례라는 행사에 참여를 한 것이고, 그 순례가 끝나면 조금은 행복한 삶에 더 가까이 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 방법을 묻고 그 해답을 듣는 것이 법문이다. 스스로에게 늘 하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되려고 하나?' 하나는 본질의 파악이고 다른 하나는 내 목표의 설정이다.

 

참선을 하면서 늘 되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이 되려고 하나?...순례를 마치면서 다시 물어 본다. 나는 누구인가?...아무도 대답을 해 주지 못하리라. 결국 내가 스스로 해결할 문제이다. 오늘도 난 그 숙제를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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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계속해서 말했다.

 "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에게 내가 깨달은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표시가 있느냐?"

 수부티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무런 표시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곧 깨달은 자비로운 분의 표시라고 스승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스승이 말했다.

 "어떤 표시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며, 아무런 표시도 갖지 않고 있을 때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따라서 깨달은 자비로운 사람은, 아무런 표시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의 표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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