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목이 없다
일제시대를 거친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경험상 일본 순사, 경찰의 매정함과 무자비한 폭력에 치를 떨었다. 자기네들이 정한 법에 위반이 된다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모든 불문율을 없애 나갔다. 어른이나 양반에 대한 위계질서를 일본 관리가 대신했고, 가정에서 만드는 술도 세금을 내라고 윽박지르고, 독립군을 돕는다는 이유로 고문을 가했다.
점점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인심이 나빠졌고 우리의 전통은 하나, 둘 사라지고 천박한 생존경쟁만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래도 공부를 하면 일본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중 하나가 고등고시인데 고급관료가 될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무서운 일본 경찰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고등고시를 패스한 '검사'님이었다. 경찰서에 젊은 검사가 나타나면 서장을 비롯한 모든 경찰이 고개를 숙이고 그 검사님의 지휘를 받아서 범인을 처리했다. 그러니 검사나 판사는 가장 가까운 권력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즉, 모든 부모님의 소원은 우리아들이 고등고시에 붙어서 검사나 판사가 되어 건방진 일본 경찰들에게 큰 소리 치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그 결과 지금도 시골에서나 서울에서 똑똑하다고 하면 판사, 검사가 되라고 강요를 한다. 판사나 검사를 둔 시골 부모는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런 판사중에 한분이 '효봉'스님이다. 그런데 판결을 하여 범인을 사형시키고 나서 다른 사건과 관련한 일에서 진짜 범인이 다른 사람이라고 밝혀져서 이미 사형된 사람에게 죄를 짖게 된 것이다. 그 미안한 마음에 사죄를 하려고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길거리의 노숙자로 나선다. 하늘을 보기가 부끄럽다고 삿갓을 쓰고 이동네 저동네를 다니며 엿장수를 오래 하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참선수행을 독하게 했다고 한다. 마치 절두통 처럼 한번 앉으면 꿈쩍을 않고 그렇게 계셨단다. 그래서 어느덧 수행이 익었을 무렵...시장을 나가보니 사람들이 싸움을 하는데...어떤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면목이 없습니다...
그 순간 오랫동안 간직했던 삶의 의심덩어리가 모두 풀리고 완전한 자유인 해탈을 얻었다고 전한다.
...면목이 있나여?...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