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현충사(1)

덕산연담 2009. 11. 24. 10:10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한산도가'이다. 삶에 충실하면 시인이 되는가 보다. 그 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시는 언제가 향기가 있다. 밝은 달과 혼자 앉아 있는 고독이 어울리고, 큰 칼과 시름이 전쟁의 장수로서 어울리고, 그런기분 모르는 누군가의 피리소리는 인간으로의 고뇌에 마침표를 찍는다.

 

한문으로 흐려쓴듯 꼼꼼하게 쓴 '난중일기'를 보면 그 정성과 섬세함에 감탄한다. 그런 문학적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눈을 부릅뜬 광화문 네거리의 이순신 장군이라니 믿겨지지가 않는다.

 

광화문의 그 동상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부적이었단다.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고 미군의 군대가 운영하는 군정기간을 3년을 거친다. 해방의 주체가 없으니까 주인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 미군은 일본 관리를 채용하여 행정을 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총독부는 그대로 웃사람만 일본인에서 미국인으로 바뀐 셈이다. 3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1948년 비로서 이승만 대통령이 정부를 수립한다.

 

국민들에게 안심을 시키는 일은 일본인들의 기를 죽이는 일이다. 워낙 잘나고 조직적이어서 그들에게 기가 죽어지낸 세월에 우리 민족은 하층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풍수지리를 믿는 우리는 일본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역사적 인물을 찾는데 그 분이 바로 이순신 장군~!! 그분을 총독부 건물 앞에 모시면 일본사람이 기가 죽는다고 생각을 하고 거기다 동상을 세운다.

 

단지 동상 만으로도 우리가 위로를 받고 우리가 의지할 수있는 분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나는 오랫만에 현충사를 들러서 그분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쌀쌀한 늦가을...500원을 주고 표를 샀다.  앞에는 한산도가가 적혀있고 뒷면에는  현충사 설명이 있다.

 

" 이곳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하신지 108년이 지난 숙종 32년(1706년)에 공의 얼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세웠으며, 한동안 일제의 탄압으로 퇴락한 것을 온 겨레의 성금을 모아 1932년 중건을 하였고, 1966년~74년에는 본전, 유물관, 고택등을 중건하고 조경공사를 하여 오늘의 경관을 갖추게 되었다. 매년 4월 28일 충무공 탄신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으며, 공의 묘소는 아산온천 방향으로 약 9Km 떨어진 음봉 삼거리 어라산에 위치하고 있다." -현충사 사적 제 1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