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농사(11)
잘 나갈때 그만 둔다는 말이 있다. 그럴러면 용기가 필요하다. 선선해지는 가을 날씨가 자꾸만 고추잎에서 힘을 빼앗아 가는 느낌이다. 더 이상 선선해지면 고추는 그냥 서서 말라 죽을거다. 그래서 얼른 용기를 냈다. 싱싱할때 뽑아서 고추잎을 먹고 그리고 풋고추를 잘 이용하는 것이 그 동안 고추에 들인 정성에 대한 보답이리라고...
그래도 아플까하여 아주 잘 드는 가위로 한번에 밑둥을 한번에 베어서 방안으로 들였다. 전체 고추중에서 절반만을 뽑은 것인데도 그 양이 제법이다. 큰 함지박을 놓고는 천천히 고추잎만을 훝였다. 고추는 작으나 크나 구분없이 모두 따서 다른 그릇에 담고...줄기만을 골라내어 한 쪽에 모아 버린 것이다.
고추잎은 삶아서 기름에 살짝 볶아서 양념과 같이 나물을 만들어 먹고 고추는 간장과 식초에 넣어두면 삭은 고추가 되어서 맛있는 반찬이 되리라 믿는다. 한동안 허리 아픈줄 모르고 잘 정리를 했다. 그리고 고추의 밑둥을 뽑아내고 비료를 조금 뿌리고는 흙을 삽으로 뒤집었다. 잘 골라서 평평하게 만든 다음에 가을 배추를 심을 예정이다.
고추가 없어진 자리가 허전하다. 그러나 대견하다. 가느다란 고추모를 심고는 세월이지나 그 나무가 이렇게 굵게 자라서 열매를 맞고...자기의 역활을 다하고 가는것이 아름답다는 생각도 든다. 순환의 법칙이랄까?
나는 고추를 가꾸면서 참으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첫째는 태양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은 고추가 아주 잘 되었다. 싱싱하고 맛있는 고추가 되었다.
둘째는 수분의 공급이다. 물이 조금만 부족해도 금방 시들고 바로 잎을 떨군다. 일단 달린 고추는 최후까지 남긴다. 그러나 아직 꽃인상태는 꽃을 희생시킨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얼마나 치열하게 열매를 맺고 완성하느냐고 애를 쓰던지...대견스럽기까지 하다.
마지막 세번째는 교감이다. 식물이지만 고추도 느낌을 전달한다. 내가 예민하면 그 느낌을 알고 그에 따라서 내가 보살피기가 쉽다. 그러니 정성이 필요하다. 정성을 들이면 그 만큼 만족도가 높고 행복해진다. 물을 주면 고추는 넉넉한 느낌을 주고, 고추를 따면 웃는 느낌을 준다. 참으로 좋은거다.
이렇게 올해의 고추농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흐뭇하고 고맙고 좋다....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