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되는날
고민을 무척이나 하고 오늘 새벽에 골프장으로 나섰다. 어제 퇴근후 잠시 연습장에서 공을 처보니 도무지 내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도대체 왜 이렇게 골프가 들쑥날쑥인지 알수가 없다. 풀이 죽어서 걱정이 태산 같이 하고 되느대로 하지 하면서 위로하며 지난밤을 보냈다.
머리에서는 자꾸만 스윙을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힘을 빼고 어떻게 강약을 조절해야하는지...저번의 실수는 무엇인지...이런 생각이 자꾸 났다.
여름철의 후반기이다. 골프장은 요즘 손님이 없어서 친절서비스가 무진장 높아졌다. 그냥 무조건 웃으면서 웬만한 거리는 카트로 이동하는 서비스까지...인근에 골프장이 많이 생기면서 그전에 보지 못하던 서비스로 고객을 모신다. 참으로 시장경제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야하니까.
날씨는 참으로 청명하고 좋다. 무더위는 없고 바람이 건조하고 시원하다. 그늘에만 들어가면 선선하다. 하늘도 높고 어제 잠깐 비가 지나간 뒤라 시야가 확 티었다. 잔디도 물을 적당히 머금고 싱싱한 푸름을 간직한채 우리의 라운딩을 기다리는 듯 예뻤다.
오랫만에 만난 선배, 그리고 후배...참으로 인생을 알차게 사는 분들이다. 벌써 알고 지낸 것이 25년...아직도 굳굳하게 직장에서 자기의 역활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다. 얼굴은 주름지고 검은 반점이 생기지만 강건한 모습이 좋다. 자주 못보는 게 아쉬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이분들을 만날때면 나의 실수를 보이고 싶지가 않은 모양이다. 존경과 사랑이 서로에게 있으니 말이다.
아침 일찍 티박스에 서서 파란 잔듸를 조망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시는가? 잘 다듬어 놓은 잔듸가 나를 반긴다는 생각에 허허 하고 마음속으로 너털 웃음을 지어본다. 몸을 풀고...
공을 들고 티박스에 올라가면서 한편으로는 경건해진다. 멋진 샷으로 보답을 해야하는데...마치 종교의식을 치루듯 칠 방향을 바라보고 빈 스윙을 해본다. 그래 이렇게 하는거지...늘 연습하던대로 몸을 잘 조절해서, 숨을 멈추고 힘차게 1번 드라브 클럽을 휘두른다.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굿샷~~! 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공을 본다. 하늘을 가르는 멋진 포물선...
이제는 마음이 두근거린다. 세컨샷을 잘 해야지...그렇게 해서 기적처럼 나는 첫홀에서 버디를 낚고, 다른 3명은 파를 했다. 파5의 롱홀인데 말이다. 모두가 서로 놀라서 환성을 지른다. 이럴수가...대개 첫홀은 몸이 안풀려서 잘 안되는 것이 정상인데...허허.
그렇게 우리는 게임을 즐겼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늦어가는 여름날을 한참 즐긴거다. 중간에 맥주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인생을 논하고...옛날이야기도 이야기하고...그간 다른 친구들의 안부도 묻고...
목욕하고 한정식집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다음을 약속한다. 자주 보자고 말을 한다. 그래봐야 자주 못볼걸 알지만 그렇게 다짐을 한다. 서로 점심값을 낸다고하고...선물로 '고구마' 한 박스씩을 주면서 집에 가서는 우승선물이라고 뻥을 치라고 한다.
오늘은 내가 장원이다. 모두가 나를 부러워했다. 내가 얼마나 칼을 갈았는지 눈치를 못챈듯하다. 역시 골프는 잘치는 사람이 왕이다. 오늘 같은 날이 또 많이 있을리라 믿는다. 공 잘맞고, 날씨좋고, 실컨 웃고, 배불리먹고, 칭찬받고, 선물받고....어제밤에 불안해하고 고민했던 보람이 있다.
오늘은 정성을 다해서 하루를 보냈다. 참으로 알찬 하루였다.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