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선물
내가 가지고 다니는 부채를 보고는 자기 것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친구의 부탁으로 인사동에서 아무그림이 없는 부채를 샀다. 여기서는 그런 부채를 '무지부채'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만든 덕분에 단돈 3천원이면 된다. 대나무도 매우 고급인 오죽-烏竹 검은색 대나무-로 만들고 한지도 괜찮은 것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 그 친구의 부탁은 참으로 특이했다. 무엇인가를 그리든 써 넣으튼 남의 것을 베키지 않고 그냥 나만의 생각이나 그림을 원한다고 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부채가 된다고 했다. 참 좋은 생각이고 참으로 의미가 있다.
막상 부채를 펴고 거기에 무엇인가를 표시하려하니 망설여진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글은 늘 쓰는 것이니 어려울 것이 없지만 그림은 너무 서툴다. 우선은 가운데에 둥그런 원을 그리고 거기다가 붓글씨로 내가 창작한 말들을 써 놓기로 했다.
'계획없이 되는대로 살고, 주어도 주어도 모자람이 없이 보거나 들은 걸 믿지 않으면서, 있는듯 없는듯, 평화로움을 즐기나이다. 내일은 가짜 오늘만 신나게. 합'
그리고나니 조금은 허전했다. 내가 일본에서 구해온 나만의 낙관을 가운데다 찍으니 인주의 붉은 색이 조금은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리고는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낙관을 찍으면서 실수로 군데군데 붉은 인주가 묻어서 보기가 좀 그랬다. 그것을 커버하려고 다른 '무작위'식 낙관을 눌렀다. 마치 꽃이 핀듯한 인상을 준다.
이렇게 저렇게 완성을 하고 보니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다. 글을 읽어보니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나의 소망이기도 하고 내가 그간 노력해서 얻어낸 가장 '행복한 인생'의 요약이다. 그렇게 살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그럴 만한 연륜이 있다. 세상이 편해 보인다. 내가 웃고 너가 웃고...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