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연담 2009. 6. 19. 08:06

해탈이라는 말이 아침에 마음에 와서 닿는다. 우리말로 '깨달아서 자유스럽게 걱정없이 살아짐'이라고 해석을 하면 좋을 듯 하다. 그런데 왜? 해탈을 한다면서 모두가 절에 살면서 몸을 구속하고 정해진 규칙대로 살까? 결혼도 아니하고 돈도 아니벌고...그냥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배짱이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오늘 만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해탈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사는 것과 수행이라는 해탈의 공부를 분리해서 마지막의 해탈이 모든 것을 보상해 주리라는 기대로 차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반드시 맞거나 반드시 틀린 일은 없다. 그래서 절대로 무엇이 옳다는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감히 나도 오늘 해탈을 꿈꾼다. 가족들도 부양해야하고 회사도 챙겨야하지만 매일 아침 나는 해탈을 꿈을 꾸고 이렇게 사는 것이 더 쉽게 해탈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도 생긴다. ...'나'라는 생각이 없다. 그냥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그런 상태를 즐긴다면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확신한다.

 

'고오타마 싯달타' 라는 수행자가 최고의 해탈을 얻었다. 땅이 증명하고 시간과 역사가 증명을 했다. 그럼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수행을 답습할 이유가 있을까? 그분이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신 내용대로 살면 그 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분은 해탈을 위해 수행을 하라고 원하지 않으셨다. ...이미 해탈 한 모습으로 살아가라고...더 이상 해탈을 구하지 말고 그냥 이미 해탈 되었음을 알라고 당부를 하셨다.

 

내가 해탈을 구한다면서 벌리는 모든 행동은 사실은 해탈과는 멀어지는 일이다. 이미 구하는 것이 미친짓이다. 결국 구하지도 구할 것도 없는 것이 해탈이기 때문이다.

 

이미 해탈이 손안에 있다. 이미 그 속에서 살고 있다. 단지 내가 나를 '스스로'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모를 뿐이다.  잘 안되면 그냥 웃어라. 웃으면 이미 해탈은 한 걸음 더 다가 오리니...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