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연담 2009. 5. 6. 21:59

산책이라는면 사치의 극치이다. 여유와 평화로움의 다른 표현일테니 말이다. 애완견이라도 끌고 뒷짐을 짓고 어슬렁어리면서 심심함을 달래려고 정원을 거니는 상상을 해보라. 사는데 지치고 돈 버는데 온갖 에너지를 탕진해서 잠이 그리운 사람에게는 얼마나 사치이겠는가~!!

 

산책이니 산보라는 말이 옛날 우리조상님들에는 있었을까? 내 기억으로는 '마실' 간다고 잠깐 다른집에 들르는 것이 전부이었고, 두발로 걷는 것이 이동 수단인데 천천히 걸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걷고 걷는 것이 지겨운데...산책이라?

 

시대가 바뀌고 사는 모습이 바뀐 지금은 걷는 것이 하나의 자랑이다. 모든 병의 근원은 걷지 않는데서 온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걸어보고 싶어도 걸을 시간이, 걸을 장소가 여유롭지 못하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렇다.

 

영국에 출장을 갔다가 마침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 영국친구가 산책을 제안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산책길은 목장이 있는 동산을 걸어서 다니는 것이다. 울타리가 있으면서 산책을 할 정도는 길을 내 두었다. 나무 문은 있으나 걸어두지 않고 드나 들수 있도록 배려를 해 놓은 것이다. 양들이 풀을 뜯는 곳을 침범하지 않고 조용히 걸으면 된다.

 

높지 않은 구릉이라 산이라기 보다는 언덕이다. 완만한 경사에 잔디들로 되어있다. 바람이 불고, 수시로 비가 내렸다. 어렵지는 않지만 서너시간을 보내기는 상쾌하고 훌륭했다.

 

시간이 넉넉한 날...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다른 사람들은 등산을 간다고 떠들썩 할때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등산이 아닌 '산책'을 간다고. 간단히 준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때나 간다. 그런 생각으로 다시 바라본 서울의 산책코스는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한 곳이 많았다.

 

....북한산 골짜기와 능선들...도봉산의 봉우리들...관악산의 괴암들...

 

 

정원을 산책하기는 너무나 좁다. 나의 산책코스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광대한 산들이다. 아무 말없이 조용히 걷는 산책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깊은 골짜기가 만들어주는 입체적인 느낌이 나를 쉬게한다. 바라 볼수 있는 봉우리는 나에게 깊은 신뢰를 준다.

  

걷고 걸으면서 그냥 웃는다. 산책이라는 말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